83년 7월 첫 한국인 사제 조 병기 신부 부임 각 단체 구성, 피정, 세미나 등 생기 활발
조 병기 바오로 신부 1983.7 – 1987.9
한국 대전 교구 소속인 조병기 바오로 신부가 1983년 7월 뉴저지에서 씨애틀 및 타코마 지역의 주임 신부로 부임하면서 우리 공동체는 일대 전기를 맞게 된다. 조신부는1년이면 6개월씩 씨애틀과 타코마 지역에 반 반 거처하며 사목할 정도로 타코마 지역에 신경을 많이 써 우리 공동체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한다. 각 단체가 구성되고, 많은 교육 피정이 열리는 등 본당에 아연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레지오 마리애가 처음 창설된 것도 이때이다. 조신부는 1983년 5월 첫번째 열린 성령세미나에 박창득 신부등 3명의 신부와 함께 온 적이 있고, 그때 맺은 인연이 한인 사제로 처음 부임하게 되는 인연으로 이어진다. 한인 사제들을 보지 못하던 교우들은 성령세미나에 온 4명의 한인 사제를 맞아 깊은 감동을 받는다. 조신부의 강력한 권고로 33쌍의 ME 부부(씨애틀 포함)가 처음 탄생한 후 좋은 반응으로 몇 개월 후에 다시 ME를 가지게 되고 20-30쌍의 부부가 참여한다. 1984년 1월에는 올림피아 지역 교우들이 레이시에 소재한 세이크리드 허트 지저스 성당에 모여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한다. 1984년 4월에는 거의 8년간 미사를 드려왔던 세인트 피터 폴 성당을 떠나 현재의 세인트 앤 성당으로 성 정하상 바오로 한인 공동체 미사 성당이 바뀐다. 1985년에는 사제관을 씨애틀과 타코마 지역의 중간 지점인 훼더럴웨이 북부에 마련하고 (주택 임대) 조 신부가 일 년 내내 여기서 머무르게 된다. 1985년 경 갑룡 요셉 주교는 씨애틀 및 타코마 지역을 대전 교구의 공식 사목 지역으로 선포하고, 계속적인 대전 교구 신부 파견을 약속한다. 조신부의 부임과 함께 활기를 띤 사목활동으로 그가 이임할 즈음에는 신자수가 약 500여명에 이르게 된다. 1987년 9월 이임한 조병기 바오로 신부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을 얘기한다. 그는 신자들의 잘못을 직선적으로 지적한 후에는 언제나 다시 정으로 감싸 안는 정이 깊은 신부로 기억된다.
1981년 10월 포틀랜드 에비뉴 소재 세인트 피터 폴 성당에 한국 간판을 세우고 나서
자료, 글: 이택 어거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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