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M.E. 소개

ME란 무엇인가?

ME는 Marriage Encounter의 약자이며 혼인의 재만남, 혼인생활의 새로운 발견 그리고 부부들이 모여 대화하는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부부들이 원만한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더 훌륭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ME는 혼인한 부부들이 더 깊은 사랑과 풍요로운 혼인생활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이는 ME 주말에 참가 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ME 주말에서는 더 깊은 사랑의 삶을 위한 대화 방법을 보여 주며, 참가 부부들은 독특한 방법으로 개인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 ME 주말 중에는 두 부부만이 대화하게 됩니다.


ME 주말에서는 부부가 모든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떠나서 서로에게만 관심을 집중하도록 배려해 줍니다.

 

ME는 혼인 문제 상담소가 아닙니다. 그룹토의도 아닙니다. 또한 카운셀링도 아니며 종교교육도 아닙니다.

ME는 생명력 있고 활기찬 부부생활을 위한 독특한 방법입니다.

남편이나 아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서로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며, 보람 되고 행복한 부부생활을 지속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는 특별한 것입니다.

 

ME의 역사

매리지 엔카운터에 대한 아이디어는 1950년대 말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 신부가 착안한 것입니다.

 

당시 문제 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있던 칼보 신부는 대부분의 가정 문제가 불안정한 부부 관계로 부터 생긴다고 확신하고,

만일 부부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도록 도울 수 있다면 동시에 청소년들도 돕게 되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1962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8쌍의 가난한 노동자 부부들이 실험적으로 실시한 최초의 매리지 엔카운터 주말에 참가하였습니다.

1966년에는 매리지 엔카운터 주말이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서 실시되었고,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 급속히 퍼져 나갔습니다.

 

미국에서는 첫 주말이 1967년 8월 노틀담 대학에서 실시되었습니다. 그 주말에 참여했던 예수회의 갤라거 신부는 부부들이 변화되는 것을 목격하였으며,

또 사제생활에 대한 새로운 열의가 솟아남을 체험하였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매리지 엔카운터는 60년대 후반 부터 미국 교회 내에서 활기찬 운동이 되었습니다.

 

매리지 엔카운터는 현재 57개국(?) 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첫번 째 주말(영어 주말)은 메리놀회 마진학(Donald MacInnis) 신부를 중심으로 여러 사제들과 수녀들, 많은 미국인 부부들,

그리고 영어가 가능한 세 쌍의 한국인 부부들의 노력 끝에 1976년 2월에 실시되었습니다.

한국인을 위한 첫 주말(한국어 주말)은 1977년 3월에 마련되었습니다.

 

이런 분을 초대합니다.

ME는 보다 더 좋은 부부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잉꼬부부라 할 지라도, 지금 보다 더 좋은 혼인 생활을 만들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ME는 혼인한지 얼마 안되었거나 오래 되었거나 상관이 없이, 부부가 함께 기쁨을 나누며 행복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성직자나 수도자 혹은 다른 종교인도 환영합니다.

지금 현재 저희 천주교  정하상 바오로 한인 성당에 등록된

2016년 12월의 대표부부인 김다비오 + 아네스부부 와 2017년 총무부부 최 중열 안코니오 + 정숙 로사 부부 입니다.

제목"시애틀 우체부" 저자 권종상 요셉 형제 출판기념 사인회 2010.04.222022-07-2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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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애틀 우체부"   저자 권종상 요셉 형제  출판기념 사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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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4월 25일 (일요일) 11시미사후
             장소  :  성 정하상 바오로 타코마 한인성당 친교실
             주관  :  M.E 7차 동기회
             협찬  :  파이프 구역

2010 03/02위클리경향 864호
[우정이야기] 시애틀 한인 우체부 ‘세상 최고의 성공’

2010 03/02위클리경향 864호
현직 우체부가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면 남들이 뭐라고 할까. 아무리 인생 제 멋에 산다고 해도 언뜻 공감을 사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더욱이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풍요를 성공의 절대적 척도로 인식하는 우리 풍토에선 이상한 사람 취급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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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우체부>를 쓴 권종상씨.

그러나 미국 시애틀의 우체부 권종상씨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체부로 일하면서 매일 만나는 친구들이 그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면서 그를 성공한 이민자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 가는 한국인은 누구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 여기서 드림은 성공이고, 그 성공은 대체로 물질적인 것이다. 권씨의 생각은 다르다. 그가 생각하는 성공은 미국 사회에 녹아드는 삶이다.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이웃들과 따스한 인간관계를 쌓아가는 것이야말로 이민 생활에서 성공의 열쇠이자 목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 조셉. 12월 13일 우리 파티 있어. 꼭 와야 해. 알았지?”
“어 어떡하죠? 저 그날 선약 있어요.”
“여기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조셉을 꼭 부르기로 했는데…. 혹 그날 다른 약속 있다는 거 조금 미루면 안될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요.”
“아니면 우리가 날짜를 바꿀까?”
“우체부 한 명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하는 파티 날짜를 바꿔요?”
“아마 조셉 때문이라면 그럴지도 몰라.”
“그날 우리 우체국 연말 파티 있거든요. 아무튼 생각해 볼게요.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권씨가 얼마 전에 출간한 책 <시애틀 우체부>(예담)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여기서 조셉은 권씨의 영어이름이다. 권씨가 우편물을 배달하는 지역의 주민들이 연말 파티에 권씨를 초청하는 것이다. 권씨에게 성공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한 감동적인 장면이다.

시애틀 우체부를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일화는 이 밖에도 많다. 눈 내린 겨울날 어느 아파트에서 우편함을 열자 ‘우리의 우체부 조셉에게’라는 쓰인 봉투가 놓여 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 열어 보니 와인상품권이 들어 있다. 평소의 대화를 통해 우체부가 와인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선물한 것이다. 권씨는 “그날 나는 이 상품권으로 무슨 와인을 살까 생각하며 무척이나 행복했다. 세상의 모든 와인이 내 품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고 적었다.

모든 성공과 성취의 비결에는 혼(魂)·창(創)·통(通)이라는 세 가지 공통된 키 워드가 있다고 분석한 책(<혼창통>, 이지훈 저)이 있다. 시애틀의 우체부 권씨가 하는 일에도 이 세 가지 단어가 배어 있다. 그는 우편물로 세상을 읽어낸다(혼). 커플이 살던 집에 한 사람만 우편물을 받기 시작하면 그 집의 애정전선에 이상이 생겼다는 증거이고, 한 집에서 마이크와 리처드가 함께 우편물을 받는다면 둘은 게이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자신이 배달하는 우편물에 생명을 부여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창). 맡은 지역의 모든 주민 이름을 외우고, 소포우편물을 우편함 앞에 놓아두지 않고 현관 앞까지 배달해 독거노인들을 감동시킨다. 외로운 사람에게는 꼭 말을 붙이고, 종종 대화를 나누어 교감한다.(통)

책에는 미국 우체부의 작업환경과 그 속의 권씨 모습, 해변의 도시 시애틀의 풍경이 수시로 교차한다. 스타벅스 커피 향기 가득하고 주룩주룩 비 내리는 곳,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더 유명해진 도시, 많은 이가 죽기 전에 꼭 가 보고 싶어하는 곳으로 꼽는 도시지만 우체부가 하는 일은 한국과 크게 다를 리 없다.

미국에서 우체부 생활을 하는 교포가 권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미주한인우정공무원협회가 결성돼 있는 것으로 보아 적지않은 숫자임에는 틀림없다. 이들이 모두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미국 내 한국인의 이미지는 무척 좋아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권씨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민간외교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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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3월호에 실린글 

- 마음의 열쇠수리공이 된 우체부-

 

우체부로 일하다 보면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체부에게 친절하지요.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기다리는 편지나 소포를 가져다 주는 사람이 바로 우체부이기 때문입니다.

제게 친절한 조지앤 할머니와 같은 아파트 같은 층에 살고 있는 게일 할머니는 그런 면에서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가끔씩 소포를 받는 것이 있어서 문을 두드리면 차가운 목소리로 문 건너편에서 "그냥 거기 놓고 가"라는 대답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때로 우편물을 배달하다가 만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이!"하는 인사와 함께 반가움을 표시하곤 했는데, 깡마르고 꼭 마귀할멈 같은 인상을 하고 있는 게일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심지어는 내가 먼저 인사를 해도 받는둥마는둥 하고 지나쳐버리기 일쑤여서 '저런 사람도 다 있네' 라는 생각이 들게까지 만들 정도였습니다.

 

그런 게일 할머니의 메일박스(우체통)는 항상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습니다. 우체부에게 가장 힘든 경우는 수취인이 자기 메일박스를 비우지 않고 놓아두는 경우입니다. 그럼 결국 규정에 따라 우체국에 와서 우편물을 가져가라는 통지서만 메일박스 안에 놓아 두고, 이후로 열흘 동안 찾아가지 않으면 발신인에게 반송해 버립니다. 그런데, 항상 우편물을 잘 가져가던 게일 할머니의 우체통이 점점 꽉 찬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저는 순간적으로 인사도 안 받는 얄미운 게일 할머니가 우체국까지 와서 우편물을 찾아가게 만들까 하는 이상한 복수심(?)같은 게 드는 걸 느꼈지만, 그래도 일단 한번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우체통 안에 가득 찬 우편물을 고무줄로 잘 묶어서 들고 게일이 사는 3층의 아파트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두드리자, 거기엔 뜻밖에 이웃인 조지앤 할머니가 와 있었습니다. 게일은 소파에 엉거주춤하게 상반신을 눕히고 누워 있었는데, 저를 보는 것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게일 대신 조지앤이 대답해 주었습니다. "게일이 좌골 골절을 당했어. 넘어져서... 그러잖아도 지금 게일이 우편물 걱정을 하던 참이어서 내가 가지러 가려 했는데, 조셉이 가지고 올라와 주었군?"

저는 게일을 바라보았습니다. 게일은 나를 바라보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그래야 한다는 듯 제 입에선 뜻밖에도 이런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걱정 말아요. 편지는 내가 매일 가지고 올라올 테니까요."

게일이 그제서야 대답했습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저는 웃음을 띠고 대답했습니다. "전, 제가 뭘 해야 하는가 알고 있어요."

오히려 옆에 있던 조지앤이 제 대답에 놀란 듯 했습니다. 저는 손을 흔들고 그 아파트를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한 달여동안, 저는 게일에게 직접 메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처음에 딱딱한 표정이었던 게일 할머니는 점점 얼굴에 웃는 모습이 늘었습니다. 항상 문을 두들기고 나면 놓고 가라고 했었는데, 편지를 가져다주고나서는 "문 열렸어."라고 말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게일과 가끔씩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고,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늘 텍사스에 살기를 꿈꾸었던 게일은 젊었을 때 이혼의 아픔을 겪고 나서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요량으로 자기가 살던 곳과는 전혀 상관없는 서북미의 시애틀로 찾아 왔고, 여기서 법률사무소 서기로 일을 하면서 반평생을 보낸 셈입니다. 늘 법조계 사람들과 만나고, 또 피의자, 가해자 이런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사람에 대한 불신도 늘었고, 그러다보니 자기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게일의 집엔 조그만 사진첩이 반 쯤 펼쳐진 채로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었는데, 거기엔 너무 귀엽고 예쁜 소녀와 오드리 헵번을  닮은 우아한 처녀가 웃음짓고 있었습니다.

"게일, 저게 누구지요?"

게일은 잠깐 나를 힐긋 쳐다보더니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저 사진이 마음에 들어?"

"그냥, 예뻐서요." 게일은 입을 가리고 풋 웃더니 "그건 내 사진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아직은 세상이 그녀와 가깝게 있다고 여길 때 게일이 찍었던 그 사진들. 게일의 모습은 정말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에서 나온 오드리 헵번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그런 내 느낌을 이야기하자, 게일은 수줍게 웃었습니다. "그땐, 정말 그런 말 많이 들었지."

 

게일의 상황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한달 정도 후에 게일은 "이젠 내가 우편물을 가져올 수 있어. 그러니 굳이 우리집까지 안 올라와도 돼." 라고 말하면서, 제게 초컬릿이 담긴 상자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조셉 같은 우체부가 우리 우체부라는 게 정말 기뻐" 게일의 웃음은 환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가끔씩, 메일박스 옆에 놓여 있는 긴의자에서 자기 메일을 기다리는 게일에게 인사를 했고, 게일은 환한 웃음으로 "조셉, 이제 왔어? 오늘은 일이 힘들지 않아?"라고 물어 봤습니다. 한때 마귀할멈 같았던 게일의 얼굴은 오드리 헵번을 닮은 소녀의 얼굴로 바뀌어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게일의 메일박스는 다시 또 픽업하지 않은 메일 때문에 꽉 차가고 있었습니다.

'어디가 아픈가...'

저는 다시 게일의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꼭 전에 그랬던 것처럼, 조지앤 할머니가 게일의 집에 와 있었습니다. "조셉, 이번에도 메일을 가지고 왔군?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그때도 내가 가려고 했었지."

"게일한테 무슨 일 있어요?" 방 안을 둘러봐도 게일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게일은 지금 병원에 있어."

"예?"

조지앤은 게일의 폐가 약해지면서, 몸이 충분한 산소를 받지 못하는 병에 걸려 있다고 제게 설명해줬습니다.

"그러잖아도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나도 얼마전에 수술을 받아서 운전을 못해. 혹시 조셉이 일 끝나고 나서 나랑 게일한테 함께 다녀와줄 수 있을까?" 저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노라 했습니다.

 

게일이 입원해 있는 병원은 우체국에서 자동차로 10분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조지앤 할머니는 병실 안으로 들어갔지만, 저는 보호자도, 관련자도 아니어서 그냥 병실 앞에 서 있었습니다.

"조셉, 게일이 보고 싶다고 들어오라는데?" 빼꼼이 문을 열고 조지앤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게일은 안타까운 모습으로 말라 있었지만, 눈만은 초롱초롱했습니다. 그녀는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게 손을 내뻗었고, 저는 그 손을 마주 잡아준채로 "게일, 괜찮아 질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저 내 손을 잡고 있다고 눈물을 한 방울 톡 떨어뜨렸을 뿐 아무말 하지 않다가 힘겹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내, 편지, 조지앤에게 전해주면 돼." 

"그럴께요. 걱정 말아요."

회진 온 간호원이 다시 게일에게 호흡기를 끼워주는 모습은 안타까웠습니다.

 

병원 문을 나서서 조지앤을 다시 집으로 데려다주는 길에, 조지앤이 내게 말했습니다.

"조셉은 우체부이기도 하지만, 락스미스(열쇠수리공) 가 되도 잘 할 뻔 했어."

"예?"

조지앤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아무도, 게일의 마음을 저만큼 열어준 이가 없었어. 가끔 게일이 그랬어. 조셉이 아니었다면, 아마 자기는 누구하고도 말하지 않을 뻔 했다고. 게일은 네가 우편물을 가져와서 말 붙여주고, 자기말 들어줄 때가 지금까지 제일 행복했었대."

그냥, 눈물 한 방울이 저도 툭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는 조지앤이 건네주는 작은 앨범 한 권을 받았습니다.

"이거, 조셉거야." 그리고 그녀는 연신 눈물을 훔쳤습니다.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게일이 영면한 것입니다. 내가 궁금해했던 그 작은 앨범. 게일은 그걸 제게 주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장례식엔 몇 사람 오지 않았습니다. 조지앤, 그리고 아파트 매니저인 제임스와 그 여자친구, 그리고 게일이 생전에 일했던 법률사무소 직원들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몇몇이 참석했고, 저는 그대로 우체부 복장 그대로 일 끝나고 나서 게일의 빈소를 찾았습니다. 조지앤이 저를 맞았고, 게일은 편안한 얼굴로 꽃으로 장식된 수수한 관 안에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미국 장례식에서는 이렇게 망자의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저는 과거에 게일이 얼마나 예뻤을 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평화로웠습니다. 그리고 간단한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울어야만 했습니다.

 

어쩌면 게일과 나는 이렇게 인연을 맺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베풀었던 작은 친절에 게일은 그녀의 마음을 열고, 저를 기꺼이 친구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친구가 됐을 때, 게일은 가장 소중한 것을 내게 남겨주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남겨준 앨범으로, 또 앞으로도 내 친절을 다 해, 이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다짐으로 가슴 안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소중한 다리, 그것은 친절과 진심입니다. 게일은 제게 그것을 알려주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게일이 살던 아파트 앞 창문에서 붉은가슴 지빠귀가 유난히 즐겁게 노래하는 청명한 늦겨울날의 정오, 저는 다시 게일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남겨주고 간 행복한 추억 하나를 다시 생각합니다. 누군가와 정을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은 추억이라는 보물을 가슴 속에서 꺼낼 수 있도록 만듭니다. 편지를 배달하는 제 손길에 조금씩 힘이 더 들어갑니다.

 

게일, 편안하지요?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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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과 사진은 권종상 형제님의 블로그에서 발췌하여, 동의 없이 올린글,그림입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옮긴이: 크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