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봄꽃은 변함없이 피어 화단을 덮습니다. 건너편 집에 피어난 화사한 이름모를 꽃나무가 봄이 왔음을 알리고, 피어난 벚꽃들이 아직 우리 동네를 모두 덮지는 않았지만, 우리 동네에도 곧 꽃비가 내릴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길을 덮고 바람에 쓸려가다가 우리 집 잔디와 화단을 덮어버리는 꽃들이 모두 져 버릴 때 쯤 해서 여름이 근육질의 몸매를 드러내고 찾아올 것임을 잘 압니다.



지난 주에는 일주일 내내 일했고, 이번주는 월요일이 휴일입니다. 갑작스레 돌아오는 토요일에 우리집에서 ME 동기 모임이 잡혀버린 터라, 아내는 제게 청소를 해 줄 것을 부탁하고 일터로 떠났습니다. 몸이 힘들어서 억지로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월요일 하루, 휴일이라고 좀 꽉 채워 보내고 싶었는데, 몸 상태 때문에 어영부영 보내게 생겼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침대에 누워있다가 머리맡을 보니, 오래전 제 생일날을 위해 아직 결혼하기 전 아내가 그려 보내주었던 그림 하나가 눈에 띕니다. 아, 저때, 아직 우리가 처녀 총각이었을 그 때, 저는 그녀가 그린 그림을 보고 가슴 뭉클했었지요. 가족들이 가게를 해 돈을 모으고, 그렇게 이사를 해 들어갔던 집의 거실 벽엔 암모나이트와 온갖 바다 화석들이 박혀 있었습니다. 아마 과거엔 그런 돌들로 집을 짓는 것이 한때 유행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이사한 집 이야기를 했는데, 아내는 거기서 모티프를 얻었던 듯, 마치 화석이 새겨진 듯한 돌의 그림을 그려 제게 보내왔었습니다.



문득 오늘 아침 일이 생각났습니다. 몸이 힘드니까 귀찮아서 아내에게 아이들 데려다 주고 오라고 시켰고, 손님맞이 해야 한다고 청소해달라는데 짜증을 부리고, 함께 차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아내는 자기가 요즘 좀 우울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럴 이유가 뭐가 있냐고 대꾸했을 때, 아내는 제게 그리 말했습니다.

"나보다 컴퓨터에 더 관심이 많잖아."

아, 그랬었는가,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소통이란 것에 대해 내 스스로는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타인들과의 소통만에 관심이 많았을 뿐, 실제로 아내에게 쏟아주는 소통의 노력이 과연 얼마나 되고 있는가, 문득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아직은 우리 사이 별 이상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그런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아마 제 비겁함이 그걸 인정하기 어려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아침을 챙겨주고, 커피와 함께 먹을 떡도 챙겨주고 집을 나섰습니다.

"애들 픽업 해주고, 청소도 좀 해 줘요."

"응, 그럴께." 제 목소리도 조금 달라집니다. 하긴, 아내가 원하는 것은 때 되면 챙겨주고 특별한 날을 만들어주는 이벤트만은 아닐 것입니다. 눈을 조금 더 크게 뜨고, 내가 뭘 도와주어야 할지, 어떤 작은 감동을 만들어줘야 할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일단 몸을 움직여 뭔가를 해야 하겠습니다.



아, 이넘의 날씨하고는. 갑자기 눈이 내립니다. 쌓이거나 할 것 같지는 않지만, 보기엔 좋습니다.

아내에게 눈온다 전화하려 했는데, 그녀에게 먼저 전화가 왔습니다. 3월에 내리는 이 눈은 꽃을 시샘해서일까요?  아직은 우리 부부, 괜찮은 듯 합니다. 서로에게 눈 내린다 챙겨주려 하다니.

이제 얼른 자리털고 일어나 청소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이 많이 포근해졌습니다.

오늘은 아내가 퇴근해 들어올 때 조금 더 꼬옥 껴안아줘야겠습니다.





시애틀에서... 

권종상 요셉